백지(白紙)
혼과 생을 바쳐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려는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힘이 있다. 고집과 집념, 자부심이 만들어낸 힘이다. 그러나 거기엔 짙은 그림자도 있다. 고된 삶으로 뭉친 그림자는 그 ‘힘’을 밀다 세우기를 반복한다.
한지는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 있다. 위대함과 소멸의 사이에서 그들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선 위의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전국의 한지 만드는 19곳을 다니며 지장(紙匠)들을 만났다.
Hanji
There is a power in those who put their heart and soul into creating something. It is the power of stubbornness, persistence, and pride. But there is also a dark shadow. The shadow of a hard life pushes and pulls the 'power' back and forth.
Hanji teeter on a thin line. What kind of day do they spend between greatness and destruction, and what is it like to be a human being on the line?
I traveled to 19 hanji makers across the country and met with the makers.
There is a power in those who put their heart and soul into creating something. It is the power of stubbornness, persistence, and pride. But there is also a dark shadow. The shadow of a hard life pushes and pulls the 'power' back and forth.
Hanji teeter on a thin line. What kind of day do they spend between greatness and destruction, and what is it like to be a human being on the line?
I traveled to 19 hanji makers across the country and met with the makers.
한지는?
한지(韓紙)는 한국의 전통 종이다. 아흔 아홉 번의 손길로 만들어진다고 해서 백지(白紙)라고도 부른다. 그만큼 생산 과정이 복잡하고 지난하며 땀과 정성이 들어가야 만들어지는 종이다.
겨울에 벤 1년생 닥나무를 쪄서(닥무지) 껍질을 벗기고 말린 뒤 잿물에 삶는다(증해). 이를 볕 드는 물에 며칠 담갔다가 티를 고르고 방망이로 내려쳐(고해) 짧은 섬유질로 만든다. 이후 황촉규 뿌리로 만든 닥풀과 함께 큰 물통에 넣고 섞은(해리) 뒤 대나무발로 떠서(초지) 말리고 펴면(도침) 한지가 된다. 물론 이 과정에는 매우 까다로운 원료 조건과 수많은 세부 공정, 부차적인 작업이 추가된다.
‘비단이 오백년, 한지가 천년 간다’는 말은 한지의 뛰어난 보존성을 상징한다. 8세기에 제작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751년 제작)과 신라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754~755 제작)은 모두 1300여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고스란하다.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이탈리아의 국립기록유산보존연구소(ICRCPAL)가 미술품 복원용지로 ‘외발뜨기’로 상징되는 한국의 전통 한지를 선택했다는 뉴스는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지 업계는 위태롭다.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소비가 급감했고 만드는 곳 역시 크게 줄었다. 게다가 값싼 중국산 한지의 수입으로 가격경쟁력도 잃어 현재 한국의 전통 공방은 스무 곳이 채 되지 않는다. 이마저도 대부분 영세하고 일부는 휴업 중이다. 작업자의 연령대가 높지만 후계자를 둔 곳은 몇 곳 되지 않는다. 중국의 선지나 일본의 화지처럼 국가주도의 산업화 기회도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