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격으로 집을 잃은 발렌티나(70)가 들판 위에 서 있었다. 그녀는 봄이 오니 감자를 심어야 한다며 이내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나는 한참이나 숨죽여 지켜봤다. 우크라이나 여정에서 가장 마음이 찡했던 순간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삶을 이어가려는 저 오래된 몸짓이 결국 인류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은 아닐까? 전쟁이 작아보이는 순간이었다.
Valentina (70), whose home was destroyed in the bombing, stood in a field. She began digging, saying that she needed to plant potatoes because spring was coming. I watched with bated breath for a long time. It was one of the most powerful moments of my journey through Ukraine. I wondered if this age-old gesture of carrying on with life no matter the circumstances is what has brought humanity this far. It was a moment that made war seem small.
<작업노트>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수백만 명의 난민이 폴란드와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등 인접국의 국경으로 몰려들었다. 지금까지 발생한 전쟁 난민은 800만명, 이 중 아직 돌아가지 못한 난민이 400만명에 달한다.
그해 3월 폴란드와 슬로바키아, 헝가리 국경에서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만났다. 깊은 밤, 국경을 넘는 얼굴들이 복잡해 보였다. 무사히 위험을 벗어났다는 안도감 위로 타지에서 느껴야 하는 불안감이 겹쳐 있었다. 며칠 동안의 피난길이 끝났지만 타국에서의 낯선 생활은 이제 시작이었다. 갑작스런 여정에 일상은 깨어져 있었고, 며칠 간의 긴장과 선잠으로 얼굴에는 생기가 없었다. 당장 어디로 가야 할지,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이들을 괴롭혔다. 슬픔과 절망을 드러내는 표정도 쉽게 보이지 않았다. 생존해야 하는 눈빛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예민하고 잔뜩 긴장한 얼굴들이 그때 그 국경 위에 있었다.
2023년 3월, 다시 우크라이나를 찾았다. 기차는 18시간만에야 키이우에 닿았다. 키이우 외곽은 곳곳이 폐허였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폐허를 본다는 것은 폐허가 되는 과정을 상상하게 되는 일이었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 역시 짐작하기 힘든 비참함을 헤아려 본 뒤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폭격 받은 아파트엔 빨래가 널려 있었고 사람들은 불탄 자동차 사이를 지나며 안부 인사를 나눴다.
전쟁은 총알과 미사일만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삶으로도 기록돼야 한다. 소수의 권력자가 일으킨 비극이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고, 그들의 삶이 깨지고 흔들렸지만 모두의 삶을 끝내 어쩌지는 못했다. 키이우의 지하철역에서 다시 열정적인 춤을 추던 사람들과, 집을 잃고도 봄의 들녘에서 감자 심을 땅을 일구던 할머니의 힘 있는 몸짓 앞에서 전쟁은 작아보였다. 일요일, 미사를 마친 이들의 손에는 오랜 시간 그들의 삶을 위로했을 버드나무 가지(Verba)가 들려 있었다.
길어진 전쟁은 분명 우크라이나인들의 삶에 깊이 배어들어 있었다. 그러나 일상 속 전쟁의 풍경을 보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전쟁을 작아보이게 만든 작고 강인한 삶들이, 그들의 뿌리 깊은 삶의 역사가 눈에 들어왔다.
On February 24, 2022, Russian troops invaded Ukraine. Millions of refugees have fled through the borders of Poland, Slovakia, Hungary and Romania. So far, 8 million war refugees have occurred, of which 4 million have yet to return.
In March 2022 I saw Ukrainian refugees on the borders of Poland, Slovakia and Hungary. The faces across the border at night looked complicated. They had to feel both the relief that they were safely out of danger and the anxiety in other places. A few days of escape from Ukraine is over, but unfamiliar life in another country has just begun. Daily life was ruined by the sudden evacuation, and the face was lifeless due to a few days of tension and lack of sleep. The fact that they did not know where to go right away or when they could go back bothered them. It was not easy to see a face showing deep sadness and despair. The face that had to survive could not afford it. Sensitive and heavily nervous faces were on the border.
In March 2023, I visited Ukraine again. The train didn't reach Kyiv until 18 hours. Many places were in ruins outside of Kyiv. People were still living there. Seeing the ruins meant imagining the process of becoming ruins. Meeting people living in it was also possible only after considering the misery that was hard to guess. Laundry was strewn across the bombed apartments and people greeted each other as they passed between burned cars.
War should be recorded not only through bullets and missiles, but also through the daily lives of ordinary people. The catastrophe caused by a small number of powerful people fell on the heads of countless people, and many people's lives were broken and shaken, but they couldn't end everyone's lives. The war seemed small in the face of the dynamic gestures of those who were dancing again at the Kyiv subway station and an old woman who was planting potatoes in the fields of spring even after losing her home. On Sunday, those who finished the mass held a willow branch (Verba) that would have comforted their lives for a long time.
The prolonged war was obviously deeply ingrained in the lives of the Ukrainians. However, the more I tried to see the scenery of war in their daily life, the smaller and stronger lives that made the war look smaller, and the history of their deep-rooted lives caught my eyes.
방송 영상: [아침에 한 장] 전쟁이 작아보이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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