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iv, Ukraine 2026
<작업 노트>

Unending
2022-2026

국경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수백만 명의 난민이 인접국의 국경으로 몰려들었다. 깊은 밤, 국경을 넘는 얼굴들이 복잡해 보였다. 무사히 위험을 벗어났다는 안도감 뒤로 타지에서 느껴야 하는 불안감이 겹쳐 있었다. 당장의 피난길이 끝났지만 타국에서의 낯선 생활은 이제 시작이었다. 갑작스런 여정에 일상은 깨져 있었고, 며칠 간의 긴장과 선잠으로 얼굴에는 생기가 없었다. 당장 어디로 가야 할지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이들을 괴롭혔다. 슬픔과 절망을 드러내는 표정도 쉽게 보이지 않았다. 생존해야 하는 눈빛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전화기를 움켜쥐고 예민하고 잔뜩 긴장한 얼굴들이 그때 그 국경 위에 있었다.

키이우 익스프레스
바르샤바를 출발한 기차는 18시간만에야 키이우에 닿았다. 키이우 외곽은 곳곳이 폐허였다. 폐허를 본다는 것은 폐허가 되는 과정을 상상하게 되는 일이었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 역시 짐작하기 힘든 비참함을 헤아려 본 뒤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폭격 받은 아파트엔 빨래가 널려 있었고 사람들은 불탄 자동차 사이를 지나며 안부 인사를 나눴다.

댄스 인 키이우
전쟁은 총알과 미사일만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삶으로도 기록돼야 한다. 소수의 권력자가 일으킨 비극은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 위로 재앙처럼 쏟아졌지만, 그들 모두의 삶을 끝내 어쩌지는 못했다. 키이우의 지하철역에서 다시 열정적인 춤을 추던 사람들과, 집과 가족을 잃고도 봄의 들녘에서 감자 심을 땅을 일구던 발렌티나 할머니의 힘 있는 몸짓 앞에서 전쟁은 작아보였다. 인류는 그렇게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어느 봄의 일요일, 미사를 마친 사람들의 손에는 오랜 시간 그들의 삶을 위로했을 성수가 뿌려진 버드나무 가지가 들려 있었다. 길어진 전쟁은 분명 우크라이나인들의 삶에 깊이 배어들어 있었다. 그러나 일상 속 전쟁의 풍경을 보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전쟁을 작아보이게 만든 작고 강인한 삶들이, 그들의 뿌리 깊은 삶의 역사가 눈에 들어왔다.

길 위에서
정처 없는 나날 속에 우연한 만남들이 이어졌다. 어떤 눈빛, 어떤 공간이 나를 멈춰세웠다. 길 끝마다 울컥하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었다. 나는 헤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길 위에서 가슴 속에서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생겨났다. 이 여정은 내가 마주친 어떤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뭔지 모를 아련한 느낌마다 셔터를 눌렀다. 어쩌면 희미하고도 강렬한 어떤 생명력을 느끼고 싶었는지 모른다. 눈에 밟힌 그것들이 내 안의 어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희미한 것들이 갖는 선명함이 있다.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어슴푸레한 것들이지만 그것들이 갖는 의미는 희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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